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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지진, 숫자로 정리되지 않는 재난에 대해 생각한다

A cracked concrete road symbolizing the Venezuela earthquake and the fragile memory of disasters

Updated: July 7, 2026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숫자를 봤다.

공식 집계 기준으로 사망자는 3,535명이다. 부상자는 16,740명이다. 집을 잃은 사람은 17,854명이다. 적어도 12,800명이 카라카스와 라과이라 지역의 임시 대피소 80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실종자 수치는 더 복잡하다.

공식 실종자 통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공식 발표는 아니지만, AP는 베네수엘라 야권이 만든 웹사이트에 30,000건이 넘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Reuters도 7월 4일 기준으로 널리 사용되는 비공식 실종자 집계가 41,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 숫자들을 보고 한참 멈췄다.

사망자 3,535명.
부상자 16,740명.
공식은 아니지만 실종 신고 수만 건.
이재민 17,854명.

숫자로 쓰면 재난은 이상하게 정리되어 보인다.
마치 표 안에 넣을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 숫자 안에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고, 어제까지 돌아가던 집이 있다.
사망자 수는 한 줄로 적을 수 있지만, 3,535개의 죽음은 한 줄로 이해할 수 없다.

실종자 수치는 더 그렇다.
공식 통계가 없고, 비공식 신고가 수만 건이라는 말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기다림의 수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확인되면 통계가 된다.
하지만 실종은 통계가 되기 전까지 가족을 붙잡아둔다.
포기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만든다.

나는 재난 숫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숫자는 필요하다. 피해를 알아야 구조도 하고, 지원도 하고, 복구 계획도 세운다.
하지만 숫자만 보고 있으면 재난을 너무 쉽게 이해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지진은 자연재해라는 말 앞에서 멈춘다

이번 지진은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거의 연이어 발생한 사건이다. Reuters는 두 지진이 6월 24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와 인근 해안 지역을 강타했다고 보도했다.

지진은 자연재해다.

이 말은 맞다.
사람이 땅의 흔들림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정치가 지각을 멈출 수 없고, 경제 정책이 지진파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멈춘다.

지진은 자연재해다.
하지만 피해도 전부 자연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땅이 흔들린 것은 자연의 일이다.
하지만 어떤 건물이 무너졌는지, 어떤 병원이 버티지 못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대피소로 몰렸는지, 어떤 가족들이 구조 장비를 기다리다 결국 직접 잔해를 파야 했는지는 자연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재난은 자연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재난이 얼마나 큰 비극이 되는지는 사회의 약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은 더 약한 집에 산다.
공공 시스템이 약한 곳에서는 구조가 늦어진다.
의료 체계가 이미 지쳐 있던 곳에서는 재난 뒤에 병원이 더 빨리 무너진다.
공공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정부의 발표조차 사람들에게 충분한 안심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재난은 단순히 땅이 흔들린 사건이 아니게 된다.
그 사회가 오래 방치해온 것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

언론이 막히면 구조도 늦어질 수 있는가

이번 지진을 보면서 언론의 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언론통제가 실제로 몇 명의 인명 피해를 키웠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려면 더 많은 조사와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난에서 정보가 생명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디가 무너졌는지.
누가 아직 잔해 밑에 있는지.
어느 병원이 사람을 받을 수 있는지.
어느 대피소에 물과 약이 부족한지.
어떤 건물에 오래전부터 위험 신호가 있었는지.

이런 정보는 단순한 보도가 아니다.
재난 상황에서는 구조의 지도이고, 생존의 속도이다.

그래서 언론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재난 대응도 느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가 틀렸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만 언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빠르게 말하기 위해 언론이 필요하다.
불편한 사실을 가리지 않기 위해 언론이 필요하다.

베네수엘라는 지진 이전부터 언론 자유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온 나라다. RSF는 베네수엘라 언론이 두려움, 위협, 자기검열 속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고, 선거 기간 전후로 228건의 언론 자유 침해와 다수의 웹사이트 차단, 언론인 구금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CPJ도 베네수엘라 당국이 언론인이 보복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배경을 보면서 질문이 남는다.

언론이 위축된 사회에서 위험 신호는 얼마나 빨리 드러날 수 있을까.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건물 문제를 말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고 기록되고 압박이 되었을까.
재난 이후 정부 대응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얼마나 빠르게 공론화될 수 있었을까.

AP는 일부 주민들이 정부 지원 없이 가족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 공무원 신분의 주민은 보복이 두려워 이름 일부만 밝힌 채, 공공주택의 부실 시공 문제와 늦은 구조 대응에 분노를 표했다고 전했다.

나는 이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재난이 났는데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이미 또 다른 재난이다.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닐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권리, 들을 수 있는 권리, 위험을 미리 경고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무너진 것일 수 있다.

언론통제가 사람을 직접 죽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보가 막히고, 비판이 위축되고, 위험 신호가 늦게 전달되는 사회라면 재난 앞에서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재난에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때로는 침묵도 피해를 키우는 구조가 된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재난을 겪은 나라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베네수엘라가 처음으로 이런 재난을 겪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9년 12월, 지금의 라과이라 지역을 포함한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에서는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했다. USGS는 당시 폭우가 수천 개의 산사태를 일으켰고, 해안 지역을 덮친 토석류와 홍수로 15,000명에서 30,000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지진의 피해가 큰 라과이라는 과거에도 재난의 기억을 가진 곳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왜 과거에 그렇게 큰 피해를 겪었는데도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을까.
왜 위험은 기억되었는데, 사회는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졌을까.
왜 희생은 있었는데, 그 희생이 더 튼튼한 건물과 더 빠른 구조 체계와 더 강한 공공 안전으로 완전히 바뀌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냥 “정부가 무능했다”고만 말하면 너무 쉽다.
물론 정부의 책임은 있다.
국가는 재난이 오기 전에 건물을 점검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병원을 유지하고, 대피 체계를 만들고, 위험 지역의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왜 그런 개선이 어려웠는지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는 지진 전부터 이미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 속에 있었다. EU 인도지원 당국은 UN 자료를 인용해 지진 이전에도 베네수엘라에서 79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했고, 인구의 약 56%가 극빈 상태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 홍수, 산사태, 기름 유출, 무장 폭력 같은 자연적·인위적 위험도 인도주의 부담을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장기적 안전 투자는 계속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하면, 내진 보강은 뒤로 밀린다.
병원이 오늘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면, 미래의 재난 대비는 뒤로 밀린다.
정치가 불안정하고 경제가 무너지면, 도시 계획과 건축 기준과 재난 훈련은 말로는 중요하지만 실제 예산에서는 밀린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개선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에 개선되지 않은 것이 아닐 수 있다.
개선해야 했지만, 그 사회가 이미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개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난해서 안전을 미룬 사회는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른다.
정치가 불안해서 공공 시스템을 돌보지 못한 사회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의 생명으로 그 대가를 낸다.
재난 대비는 여유가 있을 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여유가 없을수록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가가 재난 앞에서 해야 하는 일

베네수엘라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Reuters는 정부가 거의 30,000명의 관계자와 3,281명의 국제 구조 인력이 투입됐다고 밝혔고, 이후 Delcy Rodríguez가 정부 대응을 방어하며 향후 재난 대응을 위한 새 군 조직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UN과 WHO, PAHO 등도 의료 지원, 시신 관리, 백신 계획 등을 돕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재난 대응은 “무언가를 했다”는 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간에 도움을 받았는가이다.
건물 아래 사람이 있을 때 하루는 행정 시간이 아니다.
그 하루는 생명이다.

AP는 일부 가족들이 정부의 충분한 도움 없이 맨손이나 삽, 곡괭이 같은 도구로 잔해를 파고 있다고 전했다. 어떤 주민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돈을 모아 크레인을 빌리는 문제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보도를 읽으면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가는 재난이 난 뒤에만 나타나서는 안 된다.
국가는 재난이 오기 전부터 있어야 한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있어야 한다.
병원이 한계에 닿기 전에 있어야 한다.
대피소가 사람을 모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공간이 되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시민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

재난 대응 능력은 재난 당일에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평소의 예산, 평소의 제도, 평소의 건축 기준, 평소의 공공 신뢰가 재난 당일에 드러난다.

이것은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든 안전을 비용으로만 보면 언젠가 그 비용을 사람의 생명으로 다시 치르게 된다.
낡은 건물을 그냥 두고, 병원을 계속 버티게만 하고, 취약한 사람을 위험한 곳에 남겨두면 재난은 언젠가 그곳을 먼저 찾아간다.

국제사회는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까

국제사회도 움직이고 있다.

EU는 6월 지진 이후 긴급 수요 대응을 위해 500만 유로의 긴급 지원을 발표했다. Reuters는 UN이 베네수엘라 정부와 협력해 구호 활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 구조팀과 공학·의료 지원팀이 계속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 지원은 필요하다.

국경이 다르다고 고통까지 남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무너진 건물 아래에 있고, 아이들이 대피소에서 병에 걸릴 위험이 있고, 가족들이 시신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면, 그것은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국제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국제사회는 구조팀을 보낼 수 있다.
의약품을 보낼 수 있다.
식량과 텐트와 장비를 보낼 수 있다.
무너진 뒤의 고통을 조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이 오기 전 수년 동안 쌓인 사회의 약점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국제 구조팀이 와도 오래된 건축 부실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다.
긴급 구호품이 와도 무너진 공공 신뢰를 바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
의료 지원이 와도 이미 약해진 보건 체계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재난은 결국 다시 한 사회의 평소로 돌아간다.

평소에 무엇을 지켰는가.
평소에 누구를 먼저 보호했는가.
평소에 안전을 비용으로 봤는가, 생명으로 봤는가.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말 배웠는가

재난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많은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안전 예산은 뒤로 밀린다.
낡은 건물은 그대로 남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위험한 곳에 산다.
병원은 다시 버티는 것이 당연한 곳이 된다.
구조 시스템은 다음 재난이 오기 전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언론은 위험 신호를 묻는 대신, 때로는 조용히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나는 이것이 재난보다 더 무서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연재해는 반복될 수 있다.
지진도 다시 올 수 있고, 홍수도 다시 올 수 있고, 산사태도 다시 올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이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주 잊는다.
슬픔이 지나가면 잊고, 뉴스가 바뀌면 잊고, 복구라는 말이 나오면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복구는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복구는 같은 방식으로 다시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재난을 기억한다는 것은 슬픔을 오래 소비하는 일이 아니다.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물과 제도와 예산과 구조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위험을 말하는 사람의 입을 막지 않는 일이다.

베네수엘라 지진을 보면서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 배움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잠시 슬퍼한 뒤 다시 잊고 있는가.

지진은 자연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뒤에 남은 질문은 인간에게 향한다.

인간성은 재난 뒤에 눈물을 흘리는 데에만 있지 않다.
진짜 인간성은 재난이 오기 전에 누군가의 안전을 미리 지키려는 선택에 있다고 생각한다.